뿔난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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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 작가 글

뿔난 감자

 

 

베란다에 둔 감자가 싹이 났어요..

제목 : 뿔난 감자

 

내 서재에 감자 하나가 푸른 꿈을 꾸며 방안을 지키고 있다.

얼마 전 친정어머니께서 강원도에 가서 맛있는 감자 한 상자 가지고 오셨다. 시집간 딸에게 주기 위해서 직접 가지고 오신 것이다. 굵고 실한 것으로 가득 담긴 감자를 보면서 이것을 어떻게 해서 먹을까 고민하다가 찌기도, 튀기기도 하고 된장을 풀어서 감자를 쏭쏭 썰어 된장국도 하고, 몇 가지 반찬을 해서 먹었다.

그래서인지 감자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에는 영양결핍증 환자가 거의 없으며 장수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예전에는 감자가 구황식물로 많이 쓰였다.. 보릿고개나 쌀이 부족한 북한에서 주로 주식으로 사용하였다. 어느 잡지를 보니 외국에 어느 기관에서 북한에 감자를 지원했다는 말이 있다.

굶주린 북한 동포에게 감자를 부족한 쌀 대신 주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가져온 감자가 너무 많아서 주변의 이웃들에게 선심 쓰듯 조금씩 나눠주기도 했다. 그래도 많이 남았다.

아파트라 마땅히 놔둘 데가 없어서 부엌 옆에 있는 베란다에 두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 감자에 싹이 났다. 겨울인데도 아파트 안이라 따뜻하고 햇볕이 들어와서 그런지 씨눈 속에서 파란 잎들이 돋아나기 시작하였다. 그 파란싹에는 솔라닌이라는 감자 독이 있어서, 가열해도 없어지지 않고 만일 먹을 경우 설사 복통을 일으킨다. 그래서 싹이 튼 부분을 과감하게 제거하든지 아니면 버리는 게 최선이다.

그래서 버릴까? 어쩔까 망설이다가, 갑자기 키워보고 싶었다.

물론 흙이 있는 땅은 아니지만 적당한 물을 넣고 햇볕을 준다면 꽃이 피지 않을까?? 이제 아주 작은 뿌리가 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자라면 화분에 옮겨 심을 생각이다. 그 감자가 자라서 자주색 감자는 자주색 꽃이 피고 흰 감자는 흰 꽃이 필 것이다. 또한 자연의 법칙이 신기하다. 어떻게 꽃을 보고 씨앗을 알 수 있을까? 또한 오묘하다.

감자꽃 필 무렵이면 이모가 생각이 난다. 얼굴이 하얗고 보름달같이 동그란 감자를 닮은 그 해 시집간 이모네 집에 놀러 간 적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첩첩 산골마을이었다. 논이 별로 없고 밭작물로 생계를 이어 나갔다. 조카가 놀러왔는데 군것질할 것은 없고 이모는 이쁜 한복 차림의 옷을 입고 조카와 함께 밭에 갔다. 밭에는 감자 꽃이 한창 피어 있었다. 자주색 감자 꽃도 있고 하얀 면사포를 닮은 흰 감자 꽃도 있었다. 한여름이라 벌들이 꽃향기를 맡고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이모는 이쁜 손으로 호미를 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굵고 실한 감자를 가득 담아 집에 와서 깨끗하게 씻었다. 그것을 삶아서 조카를 위해서 내놓았다. 그곳은 특히 감자가 잘되는 지역이었다. 쌀보다 감자를 더 주식으로 사용하였다. 감자가 굵어서 장정들 팔뚝만 했다. 그날은 유난히 달이 밝았다. 개울가에 많이 자란 모기 잡는 풀을 가득 베어 와서 불을 피운다.

낮에 밭에서 가지고 온 감자를 깨끗하게 씻어서 솥에 찐다. 팔월의 밤하늘에 평상에 앉아 분이 나온 북실북실한 감자를 소쿠리에 가득 담은 감자를 먹으면서 그 무더운 여름을 산골에서 재미있게 보냈던 추억이 있다. 그때 기억은 오래오래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 뿌리는 수많은 감자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세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마터면 버릴 뻔 했던 감자가 다시 생명을 이어나가는 경이로움을 내 눈으로 목격하면서 솔라닌이란 성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마치 가시가 장미를 보호하듯, 저장성과 발아력을 높게 하여 동물들에게 먹히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어 꼭 필요한 성분이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수많은 밀이 되었듯이 하나의 감자 속에 이미 그 많은 씨앗을 품고 있다.

 

감자꽃이 피었어요.^^

 

박이 너무나 커서 표주박으로도 쓸 수 없고 아무 쓸모가 없어 버리자고 하자 장자는 큰 박은 통째로 비워 술통처럼 해서 배로 이용하면 된다는 장자의 소요유 편에 이야기가 나온다. 크고 볼품없는 박 하나에도 그 쓰임이 있으니, 나도 또한 나의 그릇을 갈고 닦아서 크게 만들어 반드시 훌륭하게 쓰일 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매사에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의 이로움이 되게 할 것이라고 푸른 감자를 바라보면서 가슴 깊이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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