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위로 - 짬짜미 독시(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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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책소개

작은 위로 - 짬짜미 독시(詩) ^^






짬짜미 독시(詩)

도서명 작은 위로
지은이 이 해인 출판사 열림원


새소리도 바람소리도 봄에 듣는것과 가을에 듣는 것은 좀 다른 것 같다. 왠지 쓸쓸하면서도 기쁘고, 비어 있는 듯 하면서도 충만한 가을의 소리들을 나는 참으로 사랑한다. 산에서 바다에서 불어오는 가을 바람이 마음까지 서늘하게 해주는 요즈음 , 기도하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면 나는 함께 지내다 별세하신 우리
수녀님들을 종종 꿈길에서 만나곤 한다.
아무말 없이 웃으며 다가오는 이들의 그 평온한 모습을 보고 나면 나의 일상에도 잔잔한 평화가 스며들고
내게 주어진 시간들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져서 옷깃을 여밉니다.

“한세상을 살다보면 ...사람들에게 베푸는 작은 인정, 작은 위로가 제일이에요.
성덕은 바로 그런 노력이 아닐까 싶어요....”

제목 : 작은 위로

잔디밭에 쓰러진
분홍색 상사화를 보며
혼자서 울었어요

쓰러진 꽃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하늘을 봅니다

비에 젖은 꽃들도
위로해주시구요
아름다운 죄가 많아
가엾은 사람들도
더 많이 사랑해주세요

보고 싶은 하느님
오늘은 하루 종일
꼼짝을 못하겠으니

어서 저를
일으켜주십시오
지혜의 웃음으로
일으켜주십시오
지혜의 웃음으로
저를 적셔주십시오




제목 : 어머니의 섬

늘 잔걱정이 많아
아직도 뭍에서만 서성이는 나를
섬으로 불러주십시오, 어머니

세월과 함께 깊어지는
내 그리움의 바다에
가장 오랜 섬으로 떠 있는
어머니

서른세 살 꿈속에
달과 선녀를 보시고
세상에 나를 낳아주신
당신의 그 쓸쓸한 기침소리는
천리 밖에 있어도
가까이 들립니다


헤어져 사는 동안 쏟아놓지 못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바람과 파도가 대신해주는
어머니의 섬에선
외로움도 눈부십니다
안으로 흘린 인내의 눈물이 모여
바위가 된 어머니의 섬
하늘이 잘 보이는 어머니의 섬에서
나는 처음으로 기도를 배우며
높이 날아가는
한 마리 새가 되는 꿈을 꿉니다, 어머니






제목 : 엄마와 딸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도
엄마와 헤어질 땐 눈물이 난다
낙엽타는 노모(老母)의 적막한 얼굴과
젖은 목소리를 뒤로 하고 기차를 타면
추수 끝낸 가을 들판처럼
비어가는 내 마음
순례자인 어머니가
순례자인 딸을 낳은
아프지만 아름다운 세상


늘 함께 살고 싶어도
함께 살 수는 없는
엄마와 딸이

서로를 감싸주며
꿈에서도 하나 되는
미역빛 그리움이여


제목 : 어느 노인의 고백

하루종일
창 밖을 내다보는 일이
나의 일과가 되었습니다

누가 오지 않아도
창이 있어 고맙고
하늘도 구름도
바람도 벗이 됩니다

내 지나온 날들을
빨래처럼 꼭 짜서
햇살에 널어두고 봅니다

바람 속에 펄럭이는
희노애락이
어느새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네요

이왕이면
외로움도 눈부시도록
가끔은
음악을 듣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기 전
내가 용서할 일도
용서 받을 일도 참 많지만
너무 조바심하거나
걱정하진 않기로 합니다.

죽음의 침묵은
용서하고
용서받은 거라고
믿고 싶어요

고요하고 고요하게
하나의 노래처럼
한 잎의 풀잎처럼
사라질수 있다면
난 잊혀져도
행복할거예요





제목 : 빨래를 하십시오
우울한 날은
빨래를 하십시오
맑은 물이
소리내며 튕겨울리는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밝아진답니다.

애인이 그리운 날은
빨래를 하십시오
물 속에 흔들리는
그의 얼굴이
자꾸만 웃을 거에요


기도하기 힘든 날은
빨래를 하십시오
몇 차례 빨래를 헹구어내는
기다림의 순간을 사랑하다 보면
저절로 기도가 된답니다

누구를 용서하기 힘든날은
빨래를 하십시오
비누가 부서지며 풍기는
향기를 맡으며
마음은 문득 넓어지고
그래서 행복할 거예요





제목 : 꽃 한송이 되어

비 오는 날
오동꽃이 보랏빛 우산을 쓰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넓어져라
높아져라

더 넓게
더 높게 살려면
향기가 없어도 괜찮다

나는 얼른
꽃 한송이 되어
올라갔습니다

처음으로 올라가본
오동나무의 집은
하도 편안해
내려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오실래요?









제목 : 물망초

오직
나를 위해서만 살아달라고
나를 잊어선 안 된다고
차마 소리내어
부탁하질 못하겠어요

죽는 날까지
당신을 잊지 않겠다고
내가 먼저 약속하는 일이
더 행복해요

당신을 기억하는
생의 모든 순간이
모두가 다
꽃으로 필 거예요
물이 되어 흐를거예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제목 : 소금 호수에서

나는
당신의 소금입니다

항상
짜게 남아 있으려니
쓰라림을 참아야 하고
그래서 편할 날이 없습니다

나는 당신의 호수입니다

항상
고요하게 푸르게
깨어 있어야 하니
쉴틈이 없습니다

사랑은
고달파도 아름다운
소금호수라고

여기 소금호수에 와서
다시 듣는 기쁨이여



제목 : 능소화 연가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당신이 보고 싶어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

옆에 있는 나무들에게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가지를 뻗은 그리움이
자꾸자꾸 올라갑니다

저를 다스릴 힘도
당신이 주실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주는
찬미의 말보다
침묵 속에도 불타는
당신의 그 눈길 하나가
나에겐 기도입니다
전 생애를 건 사랑입니다


제목 : 어느 조가비의 노래

바다 어머니
흰 모래밭에 엎디어
모래처럼 부드러운 침묵 속에
그리움을 참고참아
진주로 키우려고 했습니다

밤낮으로 파도에 밀려온
아픔의 세월속에
이만큼 비워내고
이만큼 단단해진 제 모습을
자랑스레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아직 못다 이룬 꿈들
못한 한 말들 때문에
슬퍼하거나 애태우지 않으렵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으니
가슴속에 고요한 섬 하나 들여놓고
조금씩 기쁨의 별을 키우라고
먼 데서도 일러주시는 푸른 어머니

비어서 더욱 출렁이는 마음에
자꾸 고여오는 넓고 깊은 사랑을
저는 어떻게 감당할까요?

이 세상 하얀 모래밭에 그 사랑을
두고두고 쏟아낼 수밖에 없는
저의 이름을 ‘작은 기쁨’ 조가비
하늘과 바다로 사랑의 편지를 보내는
‘흰구름’ 조가비입니다.